(그리고 미동이 없다. 그렇게나 잠을 설치더니만, 이번에는 웬일로 곯아떨어진 듯싶다.)
용건 외로는 네가 뭔가 더 말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오늘따라 침묵이 신경 쓰인단 말이야. 집에 별일 없는 거 맞아?
(오젠은 손아귀에 어깻죽지가 여즉 잡힌 채인 라이자를 내려다본다. 이것은 다른 하나의 철칙이다. 어비스에서의 조언은 어떤 상황에 어떤 형태로 손에 도달한 것이든 허투루 흘려들어서는 안된다. 즉 상황을 지켜보고 판단할 생각으로, 라이자를 조심스럽게 이불에서 꺼내 몸뚱이를 뒤집는다. 등이 천장을 보게. 그리고 목덜미를 지긋하게 누른다.) 자, 일어나렴.
오젠에게 붙잡힌 라이자는, 목이 꾹 눌려도 미동 하나 없이 있다가……
숨통이 막힐 정도에 다다르자, 그제서야 정신이 든 듯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오젠의 괴력도 괴력이지만, 손만 사용해 누른 정도라면 라이자가 틈을 노릴 수도 있을 텐데…….
라이자¿:……. 오젠, 맞지? 그야 나를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건 오젠 정도니까! ……. 음, 오랜만에 푹 잠들었다고 여겼는데 말이야……. 잠버릇이 심한 건 어쩌면 내 쪽이었나. 하하! 몸이 배부른 네리탄탄처럼 무거운데, 날 계속 침대에 처박아 둘 셈은 아니겠지?
오젠:그래……. 오래간만의 단잠을 방해해서 미안하군. 이쪽도 들은 게 있어서.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나는 신중한 편이잖니. 조금 어울려줘야겠어. (음성에는 특유의 나른한 웃음이 스민다. 딱 라이자가 고개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는 다섯 손가락을 펼쳐 작은 머리통을 느슨하게 쥐는 것으로 충분했다.)
위협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57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라이자¿:……. (끙, 하며 앓는 소리가 손바닥 밑에서 울린다. 항복한다는 듯 두 손을 넓게 펼쳐 보이는 동작 역시도, 어딘가 뻣뻣한 기색이 엿보인다…….) 들은 게 있다면, 설마…… 그건가. 안 그래도 꿈자리가 사나웠거든. 좀 들어 보겠어? 그러니까, 눈을 감고 나서 얼마 안 된 것 같은 때부터……. (말을 잠시 끊고는, 기민한 감각을 살려 오젠의 반응을 살피려 든다.)
말재주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83 |
| 판정결과: |
실패 |
오젠:어디 계속 지껄여보렴. 네가 종알거리는 소리는…… 정말, 터무니없이 시끄러워서 가끔은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도……. 질리지 않더라고. 가끔은 뻔뻔한 거짓말인걸 알면서도. (적어도 십수 년의 라이자를 곁에서 지켜봐온 오젠이다. 오젠은 지금, 자신의 아래 있는 그녀의 사소한 행동에서부터 확실히 평소와 다르게 부자연스러운 지점이 있다는 판단에 확신을 더한다. 손아귀에 점점 힘이 붙는다. 허나, 언제부터? 일련의 상황은 늘 그렇듯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속으로는 분명히 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네가 라이자가 맞다면, 말이지.
라이자¿:……. 푸흡. 큭, 하하하하하! 아, 하아……. 그 말, 진심이야? 오젠. (실컷 웃어 놓고도 아직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는지, 몸이 조금씩 들썩거리다가 천천히 잦아든다. 그렇게 진정되고 나서야 드디어
라이자스럽게, 다시 말하자면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이유 모를 태평함을 내비치며, 손가락만 까딱댄다. 펼친 것은 세 개뿐이다.) 아까부터 3층의 부하를 생각하고 있었다든가, 그렇지 않아? 그 목소리. 나는 꿈인 줄로만 알고 들었으니까. 그래. 나도 같이 들었다는 거야. 흉몽이 아니라 현실이라니, 어비스도 나 같은 하얀 호각이 심심할 틈을 주질 않는다니까! 역시, 동경할 수밖에 없잖아.
오젠:……. ……. ……. (아마, 날붙이로 찔러도 눈썹 하나 꿈쩍 안할 듯 묵묵부동인 얼굴에 이렇게나 선명한 동요의 낯색이 어린 경우는, 전 생애를 통틀어 손에 꼽을지도 모른다. 오젠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맞물리지 않는 사고를 천천히 짜맞추고 밑에 있는 것을 내려다보면, 분명 라이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또 다르다. 뭐지. 오젠은 그제야 이것이 자신이 지금까지 축적해놓은 관념을 전부 버려야하는, 초유의 사태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른다.) ……. 너, 드디어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보군.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
라이자¿:응? 이봐, 그 녀석에게 옮기라도 한 거야? 그, 누구더라. 그렇지~ 지르오 그 녀석! 딱히 인상 깊게 남을 만한 일을 벌인 기억도 없다고, 이쪽은. 정말이지, 납득이 안 간대도……. 음, 으음. 아닌가? 어디 보자……. 타마우가치를 겨우 때려눕혔을 때였나? 그때 녀석의 새끼들도 우연히 발견했는데……. 아니야. 어린 놈들은 가시도 보송보송하고 별다른 기현상을 유발하는 것 같진 않았지. 그럼……. (잠시 생각에 잠긴 양 잠잠했다가 입을 연다.) ……. 기억 안 나! 으윽, 뇌에 정신적 부하가……. 머리가 정말로 어떻게 되어 버릴지도 모르겠어……. 그렇지, 창고에 술병이 아직 남아 있지 않았나? 텐션을 좀 가뿐하게 해 주자고.
오젠:말에 유의미한 정봇값이 하나도 안 담겨있군. 어제 몰래 술이라도 퍼 마신거냐. (잠시나마 그녀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는 것이 기이할 정도로 조금의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놓아줄 수는 없다. 호각으로 전달받은 목소리가 사실이라면, 노련한 탐굴가가 지상까지 도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도 넉넉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라이자라면 더욱이.) 너도 그 목소리를 들었으면 알겠지. 확인할 가치는 있어.
라이자¿:나도 궁금하긴 해. (조금이나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러나 점차 평소처럼, 아니, 평소보다 더욱 격양된다.) 쿠온가타리는 토코시에코우의 잎을 흉내 내지. 그 정도로 가벼운 의태를 넘어서서, 이렇게나 정교하게 인간을 따라 할 수 있는 무언가라면…… 어쩌면, 심계 6층에서나 마주할 만한 놈일지도 몰라. 역시 떠올리고 싶어. 떠올려야만 해! 그런 굉장한 녀석을, 내가 보고도 잊어버렸을 리가― 정말 그렇다면, 오늘은 억울해서라도 잠을 설치게 될 거야! 오젠, 너도 짐작 가는 건 없지?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건가?!
오젠:……. (오젠은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다 저도 모르게 맥 빠지게 웃는다. 위험도를 예측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전무후무한 기현상을 향한 순도높은 호기심이며 찬탄이나 늘어놓고 있으니. 그 앞에 있는 것이 어떤 존재건 무슨 일이 벌어지건, 그녀의 동경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텐션이 떨어졌는지, 라이자를 놔주는 대신 목덜미의 카라를 움켜잡고 덥썩 들어올린다. 흡사 새끼 털짐승을 옮기는 어미의 모양새다.) 정말
……. 시끄러워서, 어쩌지도 못하겠네. 어떤 녀석이 거짓말쟁이인지 보면 판가름이 나겠지. 낯짝 구경이나 하자고.
다급한 것 같으면서도 경쾌함을 잃지 않는 발소리.
라이자, 혹은 라이자를 따라 하는 무언가가 도착한 모양입니다.
라이자?:오―젠, 방에 있어?! 아직 있지? 들어간다!
오젠:……. ……. (오젠은 대답 없이 방문의 보이지 않는 사각에 대기한다. 작금까지 같이 있었던 라이자는 여전히 오른손에 달랑 든 채로, 여차하면 이쪽의 라이자를 왼손으로 제압할 생각이다.)
라이자¿:어이쿠……. 들어오면 안 되지. 그렇지 않아, 오젠?
라이자의 목이, 아니, 그것의 목이, 뼈가 갈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라이자:오젠, 아직 늦지 않았어! 기억하지?! 눈을 마주치지 마!
오젠:(오젠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불길한 기척을 감지하는 즉시, 손에 든 것을 바닥에 내려찍는다. 사고보다 빠른 반사 신경 단위의 반응이었다.) 쯧.
라이자:당장 떨어져, 오젠! 내가, 쫓을 방법을 찾았으니까! (방 안으로 날쌔게 들이닥친다.)
라¿이¿자¿:(그것은 바닥에 내팽겨치자마자, 아니, 진짜
라이자의 말을 듣자마자 본색을 드러낸다. 인체의 모든 구멍으로부터 물컹한 형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라이자:(손에 쥐고 있던 큼직한 꼬챙이, 어쩌면 가시처럼 보이는 그것으로 형체를 사정 없이 찌른다. 그런데 라이자는 그것과 눈을 마주치고 있지 않나? 이미 본인은 모방의 대상이 되어서 상관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푹, 푹.) 이걸로, 당분간은! 우릴 건드리지 못하겠지! ……. 휴우.
오젠:라이자, 너 어디 있다가 이제 기어들어오는 거야. 그리고 당분간은, 이라는 말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거냐.
라이자:도무지, 이해가 안 돼. 아무리 그 녀석이 훼방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분명히 새벽부터 어비스에 다녀오겠다고 말했었잖아?! 뭐, 그래. 설명이 필요할 테니 그것부터.
그건 심계 6층에서 주로 활동한다고 해. 의태와 모방을 손쉽게 하는 놈인지라, 정보가 그다지 퍼지지 않았단 모양이야. 실제로, 우리도 녀석에게 당하기 전까지는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으니까. 여명경이나 다른 하얀 호각들은, 그걸 ‘이미테츠로’라는 이름으로 임시로 부르고 있대. ……. 그 여명경의 말이라 어디까지 믿어도 좋을지, 원.
마음에 드는 생물체를 발견하면, 그게 조그만한 네리탄탄이든, 아름다운 토코시에코우든, 하다 못해 인간 탐굴가든…… 의태하려 드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아. 여명경 말로는, 자기 부하 중 하나가 당할 뻔해서 알고 있다고 했었거든. 적어도 그것만큼은 진실 같지?
오젠:그런 녀석이 지상까지 기어올라와 행패라니, 이거야 원…… 버릇이 잘못 들었군. 판별이나 대처 방법은? 보아하니 그거, 타마우가치의 가시네에. 그걸 가지러 다녀온거니? 너도 참, 도저히 따라잡지를 못하겠군.
라이자:본체는 흐물흐물한 덩어리인 것 같았으니까. 그런 거라면, 아무리 표면이 두꺼워도 타마우가치에게 신세만 지면 해결이라고! 당분간, 이라는 말도 말이지. 실제로는 미지인 부분이 워낙 많은 놈이잖아? 아직도 노려지고 있다든가, 나를 따라 하는 녀석이 좀 더 있다든가, 같은 것까지는 잘 모르거든. 으으음……. 설마 5층에서 지혈할 만한 붕대가 없어서 아무 식물이나 뜯어다 쓰고 버린 게 화근은, 아니겠지? 에이, 설마. 하하하!
오젠:너, 부주의하게 말야……라고 한마디 하고 싶지만, 이런 종류의 원생생물이 있다는 사실은 보통은 상상하지 못하니까. (오젠은 타마우가치의 독이 서서히 듣는 듯한 물컹거리는 크리쳐에게 시선을 흘끔 준다.) 지상의 영역까지 넘나드는게 가능하다면 성가시기야 하겠어.
당분간은 바빠지겠군. 하아……. 귀찮으니 뒷처리는 대충 조무래기 녀석들에게 넘기자고.
라이자:귀찮다고?! 궁금하지 않아? 제대로 조사해서, 이미테츠로 같은 볼품없는 이름 대신 라이자식 작명을 해 주고 싶단 마음이 드는데, 나는! 뭐라고 붙이면 좋을까……. 녀석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아야 그럴싸한 단어를 조합해 줄 텐데. 그건 그렇고, 먹지 못할 고기인 건 확실해 보이니까. 우선 이것부터 처리하고 오자. 이대로 두면 바닥이 미끌미끌해지겠어. (널브러진 그것을 신발 끝으로 툭툭 건드린다.)
오젠:맛보겠다는 말은 하지 않아줘서 안심했지 뭐니. 나는 입맛이 뚝 떨어져버려서. 조사든 뭐든 하고 싶으면 너나 실컷 하려무나. 흥미 없으니까. (건성으로 손을 흔들며 자리를 뜬다.)
라이자는 바닥에 늘어진 것을 질질 끌며 집 밖으로 나섭니다.
이윽고 불에 무언가가 타는 냄새가 조금씩 퍼져 옵니다.
불꽃과는 대조적으로, 차가운 밤의 공기가 폐를 드나들면,
오늘 하루도 결국은 대지에 발을 붙이고 생존해 있단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다만, 혼자서 마주하는 생명의 무거움보다도…….
성가신 동거인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더 크겠지요.
그것만큼은 누구도 속일 수 없는 진실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