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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자] 데카르트의 악마 [오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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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러악개 2026. 4. 4.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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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전문 개변 및 스포 주의
 
한 달 전, 마을에서 갑작스레 일어난 화재.
 
불운하게도 화마는 오젠의 자택까지도 들이닥쳤었죠.
 
그럼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거처를 구했으니 다행이지만요.
 
다만…….
 
라이자:오젠! 어째서 내 침대를 떨어트려 놓은 거야?! 두 개를 붙여 쓰면 얼마나 넓고 좋은데!
 
이전 집에서부터 오젠을 따라온 군식구도 여전합니다.
 
오젠:사람 둘에, 침대가 두 개 있다는 건 말이지……. 둘 다 네가 마음대로 굴러다녀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닐 텐데, 라이자.
 
라이자:도무지 이해가 안 돼……. 같이 살고 있잖아?! 그러니까 침대도 같이 쓸 수 있지. 오젠의 침대가 옆에 있지 않으면 잠도 잘 안 온단 말이야. 요즘은 특히 심하다고!
 
다소 과장이 섞여 있으나, 라이자가 요즘 들어 잠을 설치고 있던 것은 사실입니다.
 
아직도 아이다운 면이 있으니, 꼭 애들처럼 잠자리가 바뀐 탓일지도 모르죠.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라이자의 상태나 기복에 예민한 오젠으로서는…….
 
입밖으로 말을 꺼내진 않더라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젠:멋대로 내 자리까지 넘어오다 깔아뭉개도 내게는 책임 없어. 오늘은 거기서 자도록. 또 기어들어오면 차버린다.
 
라이자:네 잠버릇이 생각보다 얌전하다는 건 나만 아는 사실이었나? 너무 걱정하지 마! 오젠의 팔 정도는 끌어안기 딱 좋은 크기와 무게감이니까. (아랑곳 않고 제 침대를 죽 밀어다가 옆에 붙여 둔다. 직후 풀썩 드러눕는다.)
 
오젠:너, 정말이지……. 내 말이 귓등으로도 안 들리나 보군. (오젠은 그 꼴을 보며 잠시 침대 째로 들어 옮기는 방법을 고려했으나, 이윽고 관두고 대신 하룻밤동안 사용할 침구를 정돈한다. 그러다, 문득 라이자 쪽으로 시선을 건넨다.)
 
라이자:……. (천장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똑바로 누운 고개가 보인다. 그러다가 오젠과 눈이 마주치면 씩 미소 짓고, 보란 듯이 두 눈을 감는다. 아마 입을 열었더라면, “걱정 말라니까!” 따위의 소리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미동이 없다. 그렇게나 잠을 설치더니만, 이번에는 웬일로 곯아떨어진 듯싶다.)
 
오젠:……. (잠시간, 아니 꽤 오랫동안이나 그 모습을 미동 없이 지켜본다. 이번에야말로 잠에 들었나. 며칠이나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면, 오늘만큼은 순순히 잠에 든대도 이상할 것은 없다. 오젠은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거나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려주는 행동 따위 중 무엇이 숙면을 조금 더 도울 것인지 고심하다, 결국 어느 것도 택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 눕는다.)
 
미미한 숨소리가, 라이자의 숙면을 알리는 듯 침묵 속에 녹아듭니다.
 
오늘 밤은 오젠도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잠들 수 있으리라고,
 
그렇게 여기면서…….
 
…….
 
“오젠!”
 
…….
 
“오젠, 오―젠!”
 
시끄럽고 익숙한 목소리가 오젠을 깨웁니다.
 
그러나, 눈을 뜬 오젠의 시야에는…….
 
옆 침대에서 자고 있는 인영만이 들어올 뿐입니다.
 
잠꼬대라기엔 또렷한 목소리였는데 말이죠.
 
오젠:…… 꿈인가. (라이자가 아직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시간대를 어림하기 위해 창문 밖을 본다.)
 
창문 밖은 아직 어두컴컴합니다.
 
해가 곧장 밝을 것 같지도 않네요.
 
…….
 
“오젠!”
 
계속되는 목소리에 의문을 느끼면,
 
어쩐지 그것이 하얀 호각에서부터 울린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오젠:……? (자신의 목에 걸린 호각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평소와 다른 점이 있는지 확인한다.)
 
호각을 살피면, 밤중에도 달빛을 머금은 것처럼 은은하게 빛이 나고 있습니다.
 
어비스 안쪽으로 나섰을 때, 멀리 떨어진 라이자와 호각으로 소통했을 때도 이렇게 변하고는 했었죠.
 
하지만 라이자는 지금 오젠의 옆에서 자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오젠, 들리면 대답해 줘!”
 
오젠:……라이자……? (자신의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반신반의하며, 소리의 근원지와 자신의 곁에서 잠들어 있는 라이자를 번갈아 보는 눈매에 구김이 진다.)
 
잠든 라이자를 두고, 호각에서 라이자의 목소리가 울립니다.
 
라이자?:오젠! 밖은 지금 밤인가? 어째 잠에서 막 깬 사람 같은걸. 난 이제 2층으로 올라왔어. 그새 내 침대를 구석에다 처박아 뒀다거나 한 건 아니지?
 
오젠:……. (착각할래야 할 수 없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한 자 한 자 들려온다. 평소의 수신 형식이나 말투와 다른 점이 있지도 않다. 오젠은 우선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곁에 있는 라이자의 상태를 빠르게 살핀다.)
 
옆에 누운 라이자가 때마침 뒤척거립니다.
 
그러다 다시 잠든 듯, 가만히 누워 있네요.
 
오젠:라이자, 일어나.
 
라이자?:……. 오젠, 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용건 외로는 네가 뭔가 더 말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오늘따라 침묵이 신경 쓰인단 말이야. 집에 별일 없는 거 맞아?
 
오젠:(명백히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 하, 오젠은 조금 힘을 실어 라이자를 흔든다.)
 
라이자는 흔들리는 대로 끙, 하고 앓는 소리를 잠시 내다가도…….
 
여전히 수마에 빠진 듯 축 늘어져 있습니다.
 
오젠:(현 상황은 3층의 부하와 유사하다. 얕은 층의 부하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받지 않게 된 것이 언제였는지도 가물거릴 정도의 오래 전의 일이었으나, 수칙은 기억하고 있다. 부하가 발생하기 직전까지의 상황을 되짚어 나가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와 함께하고 있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따위를. 그리고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을 소거한다.) 너는, 누구지?
고고학
기준치: 50/25/10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라이자?:뭐? ……. (당혹감이 어린 음성이 되돌아온다. 뒤이어 헛웃음을 삼키는 소리가 짧게 들린 것도 같다.) 정말이지, 이해가 안 돼……. 벌써 이렇게 됐다고? 오젠, 기다리고 있어. 내가 금방 갈 테니까. 그 녀석은 분명히 로 위장하고 있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놈과 눈을 마주치지 마! 내가 갈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 줘. 그냥 눈만 감고 견디면 되는 일이니―
 
호각을 통해 들려오던 목소리가 별안간 뚝 끊깁니다.
 
오젠:(겪어본 적 없는 변수. 오젠은 이례없는 상황에 그 자리에 붙박힌 듯 서있다. 수칙은 하나의 허점이 있다. 언제부터 환각이었는지 인지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반나절, 하루, 아니면 그 이상의 단위로 지속되고 있었다면, 혹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면,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어제 온종일 함께 했으나 깨어나지 않는 라이자와 이 쪽의 상황을 훤히 궤뚫어 보고 있는 듯한 호각 너머의 라이자, 어느 쪽을 신뢰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오젠은 손아귀에 어깻죽지가 여즉 잡힌 채인 라이자를 내려다본다. 이것은 다른 하나의 철칙이다. 어비스에서의 조언은 어떤 상황에 어떤 형태로 손에 도달한 것이든 허투루 흘려들어서는 안된다. 즉 상황을 지켜보고 판단할 생각으로, 라이자를 조심스럽게 이불에서 꺼내 몸뚱이를 뒤집는다. 등이 천장을 보게. 그리고 목덜미를 지긋하게 누른다.) 자, 일어나렴.
 
오젠에게 붙잡힌 라이자는, 목이 꾹 눌려도 미동 하나 없이 있다가……
 
숨통이 막힐 정도에 다다르자, 그제서야 정신이 든 듯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오젠의 괴력도 괴력이지만, 손만 사용해 누른 정도라면 라이자가 틈을 노릴 수도 있을 텐데…….
 
예상보다, 라이자의 움직임이 얌전합니다.
 
아니…….
 
이건 부자연스럽다고, 봐야 할까요?
 
라이자¿:……. 오젠, 맞지? 그야 나를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건 오젠 정도니까! ……. 음, 오랜만에 푹 잠들었다고 여겼는데 말이야……. 잠버릇이 심한 건 어쩌면 내 쪽이었나. 하하! 몸이 배부른 네리탄탄처럼 무거운데, 날 계속 침대에 처박아 둘 셈은 아니겠지?
 
오젠:그래……. 오래간만의 단잠을 방해해서 미안하군. 이쪽도 들은 게 있어서.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나는 신중한 편이잖니. 조금 어울려줘야겠어. (음성에는 특유의 나른한 웃음이 스민다. 딱 라이자가 고개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는 다섯 손가락을 펼쳐 작은 머리통을 느슨하게 쥐는 것으로 충분했다.)
위협
기준치: 75/37/15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라이자¿:……. (끙, 하며 앓는 소리가 손바닥 밑에서 울린다. 항복한다는 듯 두 손을 넓게 펼쳐 보이는 동작 역시도, 어딘가 뻣뻣한 기색이 엿보인다…….) 들은 게 있다면, 설마…… 그건가. 안 그래도 꿈자리가 사나웠거든. 좀 들어 보겠어? 그러니까, 눈을 감고 나서 얼마 안 된 것 같은 때부터……. (말을 잠시 끊고는, 기민한 감각을 살려 오젠의 반응을 살피려 든다.)
말재주
기준치: 55/27/11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오젠:어디 계속 지껄여보렴. 네가 종알거리는 소리는…… 정말, 터무니없이 시끄러워서 가끔은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도……. 질리지 않더라고. 가끔은 뻔뻔한 거짓말인걸 알면서도. (적어도 십수 년의 라이자를 곁에서 지켜봐온 오젠이다. 오젠은 지금, 자신의 아래 있는 그녀의 사소한 행동에서부터 확실히 평소와 다르게 부자연스러운 지점이 있다는 판단에 확신을 더한다. 손아귀에 점점 힘이 붙는다. 허나, 언제부터? 일련의 상황은 늘 그렇듯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속으로는 분명히 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네가 라이자가 맞다면, 말이지.
 
라이자¿:……. 푸흡. 큭, 하하하하하! 아, 하아……. 그 말, 진심이야? 오젠. (실컷 웃어 놓고도 아직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는지, 몸이 조금씩 들썩거리다가 천천히 잦아든다. 그렇게 진정되고 나서야 드디어 라이자스럽게, 다시 말하자면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이유 모를 태평함을 내비치며, 손가락만 까딱댄다. 펼친 것은 세 개뿐이다.) 아까부터 3층의 부하를 생각하고 있었다든가, 그렇지 않아? 그 목소리. 나는 꿈인 줄로만 알고 들었으니까. 그래. 나도 같이 들었다는 거야. 흉몽이 아니라 현실이라니, 어비스도 나 같은 하얀 호각이 심심할 틈을 주질 않는다니까! 역시, 동경할 수밖에 없잖아.
 
오젠:……. ……. ……. (아마, 날붙이로 찔러도 눈썹 하나 꿈쩍 안할 듯 묵묵부동인 얼굴에 이렇게나 선명한 동요의 낯색이 어린 경우는, 전 생애를 통틀어 손에 꼽을지도 모른다. 오젠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맞물리지 않는 사고를 천천히 짜맞추고 밑에 있는 것을 내려다보면, 분명 라이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또 다르다. 뭐지. 오젠은 그제야 이것이 자신이 지금까지 축적해놓은 관념을 전부 버려야하는, 초유의 사태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른다.) ……. 너, 드디어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보군.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
 
라이자¿:응? 이봐, 그 녀석에게 옮기라도 한 거야? 그, 누구더라. 그렇지~ 지르오 그 녀석! 딱히 인상 깊게 남을 만한 일을 벌인 기억도 없다고, 이쪽은. 정말이지, 납득이 안 간대도……. 음, 으음. 아닌가? 어디 보자……. 타마우가치를 겨우 때려눕혔을 때였나? 그때 녀석의 새끼들도 우연히 발견했는데……. 아니야. 어린 놈들은 가시도 보송보송하고 별다른 기현상을 유발하는 것 같진 않았지. 그럼……. (잠시 생각에 잠긴 양 잠잠했다가 입을 연다.) ……. 기억 안 나! 으윽, 뇌에 정신적 부하가……. 머리가 정말로 어떻게 되어 버릴지도 모르겠어……. 그렇지, 창고에 술병이 아직 남아 있지 않았나? 텐션을 좀 가뿐하게 해 주자고.
 
오젠:말에 유의미한 정봇값이 하나도 안 담겨있군. 어제 몰래 술이라도 퍼 마신거냐. (잠시나마 그녀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는 것이 기이할 정도로 조금의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놓아줄 수는 없다. 호각으로 전달받은 목소리가 사실이라면, 노련한 탐굴가가 지상까지 도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도 넉넉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라이자라면 더욱이.) 너도 그 목소리를 들었으면 알겠지. 확인할 가치는 있어.
 
라이자¿:나도 궁금하긴 해. (조금이나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러나 점차 평소처럼, 아니, 평소보다 더욱 격양된다.) 쿠온가타리는 토코시에코우의 잎을 흉내 내지. 그 정도로 가벼운 의태를 넘어서서, 이렇게나 정교하게 인간을 따라 할 수 있는 무언가라면…… 어쩌면, 심계 6층에서나 마주할 만한 놈일지도 몰라. 역시 떠올리고 싶어. 떠올려야만 해! 그런 굉장한 녀석을, 내가 보고도 잊어버렸을 리가― 정말 그렇다면, 오늘은 억울해서라도 잠을 설치게 될 거야! 오젠, 너도 짐작 가는 건 없지?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건가?!
 
오젠:……. (오젠은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다 저도 모르게 맥 빠지게 웃는다. 위험도를 예측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전무후무한 기현상을 향한 순도높은 호기심이며 찬탄이나 늘어놓고 있으니. 그 앞에 있는 것이 어떤 존재건 무슨 일이 벌어지건, 그녀의 동경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텐션이 떨어졌는지, 라이자를 놔주는 대신 목덜미의 카라를 움켜잡고 덥썩 들어올린다. 흡사 새끼 털짐승을 옮기는 어미의 모양새다.) 정말……. 시끄러워서, 어쩌지도 못하겠네. 어떤 녀석이 거짓말쟁이인지 보면 판가름이 나겠지. 낯짝 구경이나 하자고.
 
그 순간, 현관에서 기척이 들립니다.
 
다급한 것 같으면서도 경쾌함을 잃지 않는 발소리.
 
라이자, 혹은 라이자를 따라 하는 무언가가 도착한 모양입니다.
 
라이자?:오―젠, 방에 있어?! 아직 있지? 들어간다!
 
오젠:……. ……. (오젠은 대답 없이 방문의 보이지 않는 사각에 대기한다. 작금까지 같이 있었던 라이자는 여전히 오른손에 달랑 든 채로, 여차하면 이쪽의 라이자를 왼손으로 제압할 생각이다.)
 
라이자¿:어이쿠……. 들어오면 안 되지. 그렇지 않아, 오젠?
 
라이자의 목이, 아니, 그것의 목이, 뼈가 갈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라이자:오젠, 아직 늦지 않았어! 기억하지?! 눈을 마주치지 마!
 
오젠:(오젠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불길한 기척을 감지하는 즉시, 손에 든 것을 바닥에 내려찍는다. 사고보다 빠른 반사 신경 단위의 반응이었다.) 쯧.
 
라이자:당장 떨어져, 오젠! 내가, 쫓을 방법을 찾았으니까! (방 안으로 날쌔게 들이닥친다.)
 
라¿이¿자¿:(그것은 바닥에 내팽겨치자마자, 아니, 진짜 라이자의 말을 듣자마자 본색을 드러낸다. 인체의 모든 구멍으로부터 물컹한 형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오젠:이거 걸작이군.
 
라이자:(손에 쥐고 있던 큼직한 꼬챙이, 어쩌면 가시처럼 보이는 그것으로 형체를 사정 없이 찌른다. 그런데 라이자는 그것과 눈을 마주치고 있지 않나? 이미 본인은 모방의 대상이 되어서 상관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푹, 푹.) 이걸로, 당분간은! 우릴 건드리지 못하겠지! ……. 휴우.
 
오젠:라이자, 너 어디 있다가 이제 기어들어오는 거야. 그리고 당분간은, 이라는 말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거냐.
 
라이자:도무지, 이해가 안 돼. 아무리 그 녀석이 훼방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분명히 새벽부터 어비스에 다녀오겠다고 말했었잖아?! 뭐, 그래. 설명이 필요할 테니 그것부터.
그건 심계 6층에서 주로 활동한다고 해. 의태와 모방을 손쉽게 하는 놈인지라, 정보가 그다지 퍼지지 않았단 모양이야. 실제로, 우리도 녀석에게 당하기 전까지는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으니까. 여명경이나 다른 하얀 호각들은, 그걸 ‘이미테츠로’라는 이름으로 임시로 부르고 있대. ……. 그 여명경의 말이라 어디까지 믿어도 좋을지, 원.
마음에 드는 생물체를 발견하면, 그게 조그만한 네리탄탄이든, 아름다운 토코시에코우든, 하다 못해 인간 탐굴가든…… 의태하려 드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아. 여명경 말로는, 자기 부하 중 하나가 당할 뻔해서 알고 있다고 했었거든. 적어도 그것만큼은 진실 같지?
 
오젠:그런 녀석이 지상까지 기어올라와 행패라니, 이거야 원…… 버릇이 잘못 들었군. 판별이나 대처 방법은? 보아하니 그거, 타마우가치의 가시네에. 그걸 가지러 다녀온거니? 너도 참, 도저히 따라잡지를 못하겠군.
 
라이자:본체는 흐물흐물한 덩어리인 것 같았으니까. 그런 거라면, 아무리 표면이 두꺼워도 타마우가치에게 신세만 지면 해결이라고! 당분간, 이라는 말도 말이지. 실제로는 미지인 부분이 워낙 많은 놈이잖아? 아직도 노려지고 있다든가, 나를 따라 하는 녀석이 좀 더 있다든가, 같은 것까지는 잘 모르거든. 으으음……. 설마 5층에서 지혈할 만한 붕대가 없어서 아무 식물이나 뜯어다 쓰고 버린 게 화근은, 아니겠지? 에이, 설마. 하하하!
 
오젠:너, 부주의하게 말야……라고 한마디 하고 싶지만, 이런 종류의 원생생물이 있다는 사실은 보통은 상상하지 못하니까. (오젠은 타마우가치의 독이 서서히 듣는 듯한 물컹거리는 크리쳐에게 시선을 흘끔 준다.) 지상의 영역까지 넘나드는게 가능하다면 성가시기야 하겠어.
당분간은 바빠지겠군. 하아……. 귀찮으니 뒷처리는 대충 조무래기 녀석들에게 넘기자고.
 
라이자:귀찮다고?! 궁금하지 않아? 제대로 조사해서, 이미테츠로 같은 볼품없는 이름 대신 라이자식 작명을 해 주고 싶단 마음이 드는데, 나는! 뭐라고 붙이면 좋을까……. 녀석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아야 그럴싸한 단어를 조합해 줄 텐데. 그건 그렇고, 먹지 못할 고기인 건 확실해 보이니까. 우선 이것부터 처리하고 오자. 이대로 두면 바닥이 미끌미끌해지겠어. (널브러진 그것을 신발 끝으로 툭툭 건드린다.)
 
오젠:맛보겠다는 말은 하지 않아줘서 안심했지 뭐니. 나는 입맛이 뚝 떨어져버려서. 조사든 뭐든 하고 싶으면 너나 실컷 하려무나. 흥미 없으니까. (건성으로 손을 흔들며 자리를 뜬다.)
 
라이자는 바닥에 늘어진 것을 질질 끌며 집 밖으로 나섭니다.
 
이윽고 불에 무언가가 타는 냄새가 조금씩 퍼져 옵니다.
 
아마도 그것을 태우는 듯하네요.
 
불꽃과는 대조적으로, 차가운 밤의 공기가 폐를 드나들면,
 
오늘 하루도 결국은 대지에 발을 붙이고 생존해 있단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다만, 혼자서 마주하는 생명의 무거움보다도…….
 
성가신 동거인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더 크겠지요.
 
둘의 일상이 언제까지 지속되든 간에,
 
그것만큼은 누구도 속일 수 없는 진실일 겁니다.
 
오젠, 생환.
 
라이자, 생환.

 

 

▼ 진상 (개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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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비스 탐굴가로서의 두 사람을 집요하게 쫓으며, 기회를 노리는 ‘어떤 존재’가 있었습니다.
거처가 어비스와 조금 더 가까워진 이후, 라이자는 그것에게 직접적인 괴롭힘을 받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잘 때 항상 지독한 가위에 눌리거나, 둘을 닮은 환각과 환청을 보거나,
집에 혼자 있으면 이성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감각이 훅 덮쳐오기 일쑤였습니다.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하고 위협을 받아온 라이자는 점점 야위어져 갔습니다.
그러나, 오늘에야말로. 마냥 당하고만 있지 않기를 결심했습니다.
오래된 마을의 신앙, 종교, 미지의 생명체…
무엇이 되었건 조사한 끝에, 라이자는 ‘그것’을 잠시나마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을 겨우 얻었습니다.
역장을 감지하는 타마우가치의 가시로, 물리적인 형태를 띠고 있을 때 처리하는 것.
종일 집에 혼자 놔두고 온 오젠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것’을 해치우고 나면 더는 마음 졸이면서 살아갈 일이 없을 테니 얼마나 좋은 건가요.
오늘은 드디어 밤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 거예요.
적어도 오젠과 연락하기 전까지는 그러한 생각에 들떠 있었을 겁니다.
라이자는 연락을 주고받는 데에서부터 ‘그것’이 이제는 오젠을 탐하고 있으며,
오젠의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어느 시점부터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라이자가 집을 나간 아침 일찍부터 줄곧 흉내를 내며 붙어 있었을 수도 있겠지요.
오젠의 머릿속을 온통 헤집고 다녀 자신이 오늘 종일 나가 있을 거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들면서 말입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그것이 오젠을 완전히 집어삼키기 전까지,
라이자는 온 힘을 다해 오젠이 기다리는 자신의 집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때까지 부디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버텨주기를 빌며.